리사 공부의 경험을 통해 나는 기술개발이 되면 즉시 특허출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늘 자금 부족으로 시달리던 상황에서 특허출원이 쉬울 리 없었다. 관련 기술의 추가 특허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가 많았고, 추가 특허기술의 출원을 위해 개인 가계수표를 발행해서 특허사무소에 맡긴 적도 있었다. 그토록 어렵게 특허 출원에 주력하던 그때, 지금까지도 가슴 아픈 일로 남아있는 것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일이다.

중요한 특허 출원서 마무리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던 1998년 늦가을 나는 고향에서 아버지가 매우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그 시간을 놓치면 우리의 특허출원이 무산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특허출원은 시간과의 싸움이라서 언제 어느 곳에서 그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선점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로지 하나만을 바라보며 수년간 고생해온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선(先)출원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특허 시스템의 단점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누구든지 먼저 사용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을 선출원으로 인정해주는 ‘선(先)사용주의 시스템’을 도입해야 인터넷 같이 분초를 다투는 사업 분야에서는 국익을 위하여 더욱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하여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서 아버지를 뵙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직원들에게 그런 급박함을 내색하지 않은 채 그저 특허 출원서에만 매달려 있던 중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결국은 앞을 가렸다.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아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특허에만 매달려 있으려니 죄송한 마음에 슬프기만 했고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이 내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늦둥이로 태어나 이렇다 할 뒷바라지도 못해주었다며 늘 내게 마음을 쓰셨던 아버지. 살가운 말씀을 해 주신 적은 거의 없었지만 사업한다고 고생하는데 도움도 주지 못한다며 늘 미안해 하셨던 아버지. 그런데 이 못난 자식은 마지막까지 제 욕심만 차리고 있으니 이 불효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지…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닐까?’를 반복했고, 마음속으로는 ‘아버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되뇌면서 나는 출원서 정리를 마무리 했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이 못난 자식을 돌봐주신 아버지의 덕분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당시 출원했던 특허는 아무런 문제없이 최종 등록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후 특허등록증을 받은 그날 바로 아버지 산소로 달려가서 아버지 앞에 등록증을 놓고 큰절로 사죄하며 말씀 드렸다. ‘아버지, 꼭 우리 당대에 자국어인터넷주소 모델을 만들어서 전 세계에 보급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찾아뵙지 못했던 그 불효를 대신 하겠습니다. 아버지 꼭 지켜봐주십시오.’

그런 아픔 속에서 한글인터넷주소 서비스를 위한 솔루션 개발과 서비스 준비를 하나 둘 갖추어 나갔다. 하지만 상용화는 여전히 문제였다. 상용화에 실패할 경우 지금까지의 개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또한 개발과정에서 진 엄청난 빚을 그대로 떠안게 되기 때문에 보통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무렵 내게 또 한 번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겼다. 당시 케이블 방송이었던 매일경제TV(MBN)의 ‘벤처 투자자를 찾습니다’에서 유망 벤처기업을 소개하고 투자자를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던 우리에게도 출연의 기회가 온 것이다.

외환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 벤처열풍이 조금씩 일기 시작하던 1999년 초, 우리는 MBN 방송에 출연해서 ‘한글인터넷주소 기술과 비전’을 소개하게 되었다. 그러자 다음날 200여 통에 가까운 투자 제안 전화가 걸려왔다. 거짓말처럼 투자 제안이 몰리기 시작했고 조여오던 숨통은 순식간에 트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마침 IBI는 정보통신부가 지정하는 우수신기술업체로 선정되면서 또 한번의 기회를 열 수 있었다. 그 후 개인 엔젤 투자자들을 통해 약 3억 원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돈은 심지까지 다 타고 마지막 불꽃만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호롱불에 새로운 기름을 채우는 것과도 같은 그런 자금이었다. 그 후 우리는 조금씩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셰르파 전길남 박사와의 인연

고비에서 만난 동지


  대표전화 : 02-3665-0123   고객상담 : 02-2165-3000   FAX : 02-2671-5613   e메일 : 고객상담@넷피아콥
Copyright (C) 1995 - 2019 Netpi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