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억원 가량의 돈을 유상증자 한 후 회사에 70억 가까운 여유자금을 보유한 상태에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2005년 3월 나는 치료를 받기 위해 대표이사직을 물러나기로 했다.

당시 나는 신장이 악화되어 회복 불능의 판정을 받은 상태였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스테로이드 치료요법이었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주사로 투여하는 이 치료법은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 때문에 부작용과 위험도가 높아서 절대 안정을 필요로 했다.

스테로이드 요법은 함부로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면역력이 저하되어 외부와의 접촉이 어려운 치료법이었다. 때문에 오랜 망설임 끝에 당분간 회사 일에서는 손을 떼겠다는 다짐을 한 후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2005년 10월 초, 처음으로 스테로이드 요법을 받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몸이 괴롭고 지쳐 있던 상태에서 조용한 산장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데 서울에서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전해온 것이다. 회사에 갑자기 검찰에서 들이닥쳐 직원들의 PC와 여러 문서를 압수해갔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갑작스럽게 당한 일인데다가 내가 치료를 시작하고는 강원도로 요양을 떠났다는 사실 때문에 상황을 알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국내 부문 대표이사는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회사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도 긴급한 사후조치는커녕 외부 골프 행사로 회사에 복귀하지도 않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직원들은 결국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할 수 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의장님, 어떻게 하죠? 의장님 댁도 압수수색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이 된 직원이 내게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직원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압수? 우리 집에 와서 가져갈 게 뭐가 있겠나? 아마 보태주고 가야할 걸세. 우리는 떳떳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잘못한 게 있어야 겁도 나는 거지.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순간 아찔했다. 남들 얘기인줄로만 알았던 검찰의 압수수색이 우리 회사에서도 벌어졌다니 믿어지지가 않았고, 더구나 전혀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당시 D사와 넷피아 간에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피해를 입은 쪽은 우리여서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글주소 사업을 1997년부터 시작하였지만 D사는 2004년에 시작하여 이미 우리 넷피아가 만들어 놓은 한글주소 시장을 경쟁이란 이름으로 허물고 있었다. D사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은 과거 우리와 경쟁사였던 리얼네임즈의 한국 에이전트인 한글인터넷센터(HINC)3) 사장을 역임했던 인물로 리얼네임즈가 파산한 후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했던 당사자였다.

당시 나는 대승적 차원에서 주소창은 하나이기에 분쟁의 책임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그에게 ‘다시는 이런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일을 마무리 지었었다. 물론 넷피아를 무척이나 괴롭히고 한글주소를 혼란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노여움도 있었지만 그때는 우선 HINC에 등록한 고객들은 구제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 서로 계약까지 한 사이였기에 최소한의 신의는 지킬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로까지 확대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우선 분쟁은 2004년 경 D사에서 우리와 비슷한 서비스를 들고 나오면서 시작됐다. 당초 그들이 들고 나온 서비스는 구조적으로 우리와 다른 것이었고, 우리는 이미 독자적인 기술로 한글인터넷주소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넷피아의 프로그램은 도메인처럼 해당 인터넷 주소를 한글주소에 연결되게 하는 것이고, D사의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학교 이름이나 기업 이름을 주소창에 입력하면 이것을 해당 한글주소 사이트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포털의 검색으로 보내어 그 대가를 포털로부터 받는 방식으로 공공성 면에서도 넷피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D사 측에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한글인터넷주소로 접속하는 길을 차단하는 기능을 넣어 게임사와 음악 전문 회사 등과 손을 잡고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프로그램을 배포하며 주소 입력창에 한글주소를 입력시 그것을 포털로 보내주어 돈을 받는 방법으로 우리의 서비스를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주소창에 ‘충주시청’, ‘대한여행사’, ‘아침햇살’ 등의 한글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접속되던 것이 어느 날부터 엉뚱한 포털의 검색 사이트로 접속되도록 한 것이다.

포털은 ‘대한여행사’나 ‘뉴욕유학원’ 같은 남의 한글주소를 이용하여 이와 관련된 유사한 키워드 단어를 재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고 이것을 가로채어 주는 D사에 돈을 주는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한여행사나 뉴욕유학원 같은 수십만 한글주소 등록자가 자신의 한글주소를 광고하면 할수록 D사가 한글주소 가로채기 프로그램을 통해 이것은 포털로 보내어서 포털의 접속 빈도를 높여 해당 한글주소 기업의 광고 효과가 고스란히 포털의 매출로 이어지는 부당한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게 되었다. D사는 포털과 함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강제로 포털의 검색결과를 보게 하여 부당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에 우리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D사의 불법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서 경찰과 검찰에 고소하였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컸다. 일일 2300만이 넘던 사용건수가 무려 1000만 건으로 떨어지며 등록 고객들과 인터넷이용자들은 한글주소가 엉뚱하게 연결된 것에 항의하는 초유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변호사 자문을 구하고 할 수 없이 긴급히 이를 복구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정상적인 넷피아의 한글주소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삭제하기 위해 추가 프로그램을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에 넷피아의 한글인터넷주소 서비스를 사용하던 네티즌들이 다시 정상적으로 한글주소 서비스를 접속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복구 프로그램으로, 70만 이상의 한글인터넷주소 사용자들을 위한 긴급 복구 조치였다.

과거 미국 리얼네임즈의 파산으로 한국대리점인 한글인터넷센터(HINC)가 고객의 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서비스를 전면 중지하였을 때 넷피아는 경쟁사였던 HINC 고객들의 피해를 막아주고자 넷피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넷피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HINC 고객의 서비스 중단을 구제해준 뒤 채 1년 만에 HINC의 사장으로 근무했던 B씨가 넷피아와 개인적으로 특허를 공유하고 있던 A씨와 함께 D사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넷피아의 한글주소를 가로 챈 후 그 가로챈 한글주소를 포털로 보내 수익을 얻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무책임하게 서비스를 전면 중지하여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기업의 책임자가 또 다른 회사를 설립하여 고객의 중요한 한글주소를 방해하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예전 HINC의 고객들은 이중의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HINC의 고객 입장에서는 과거의 HINC뿐만 아니라 새로 생긴 D사로부터도 이중의 피해를 입은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같은 대표, 한 사람으로 인한 피해였다.

HINC 고객이 예전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주된 원인 중 하나는 M사가 자회사 격인 리얼네임즈를 2002년 스스로 파산시키고 그 원인 제공자인 M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유감스러운 일은 그 M사가 약 2년만인 2004년 경 예전 HINC의 사장인 B씨가 세운 D사와 다시 계약을 하여 과거 HINC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한국 고객들의 한글주소를 가로채기하는 행위를 하여 이중으로 피해를 끼쳤다는 점이다.

D사의 공동 대표인 A씨는 M사와 계약 당시 병역특례자로 병역 근무 중이었다. 어떻게 병역특례로 군복무중인 사람이 D사의 대표로 등재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M사와 계약까지 하여 전국의 인터넷 이용자 중 90% 이상에게 안정적인 한글인터넷주소를 서비스하던 넷피아를 붕괴시키도록 지원받게 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런 중에 D사의 한글 주소 차단 프로그램과 넷피아의 한글 주소 복구 프로그램의 경쟁이 분쟁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고발 사태까지 이르면서 검찰수사로 이어진 것이다.

D사의 프로그램은 고의적 한글주소 침해가 워낙 심하였는데 컴퓨터에서 D사 프로그램이 지워져도 고객의 동의 없이 자동적으로 일시에 다시 살아나게 하여 수백만 컴퓨터를 불법 스파이웨어로 감염시키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당시 마포경찰서에서는 해당 프로그램 개발자를 수사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 사건이 갑자기 중앙지검으로 송치되면서 검찰에서는 오히려 우리 회사를 압수수색 하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10년간 넷피아가 닦아놓은 길을 제멋대로 차단하며 불법 행위를 시작한 D사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오히려 넷피아를 압수수색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D사도 우리 회사와 함께 압수 수색을 당하긴 했지만 당시 직원이 250여 명이나 되었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많은 진출을 하고 있는 중견기업인 넷피아와 비교하여 D사의 직원은 고작 6명이였으니 누가 큰 피해를 입을지는 뻔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이 일로 검찰에서는 2006년 5월경 넷피아를 기소하였고, 글로벌 자국어인터넷주소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만든 연구원과 나를 징역 3년에 구형하였다. 그 후 법원 1심에서 검찰이 기소한 3건 중 2건은 무죄로, 한 건은 벌금으로 처분 받아 현재는 항소심에서 2심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검찰 압수 후 넷피아는 250여 명이었던 직원이 일부는 구조조정으로 일부는 자퇴로 70여 명으로 줄어드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며 풍전등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더욱 답답했던 것은, 그런 수사 후 1년 안에 K사가 계약 관계를 갑자기 해지통보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수많은 한글주소 등록자들이 또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고, 우리의 서비스 제휴사였던 통신사업자들과 우리의 관계를 갈라놓기 위한 것 같은 수사가 이어졌는데 그 여파가 제휴사들로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점차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일파만파가 되었다. 넷피아는 졸지에 부도덕한 기업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회사 분위기는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나를 대신한 국내 부문 대표이사가 있었지만 이 일을 앞장서서 해결하지 않았고, 요양길에서 돌아온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만 했다.

검찰에서 당당히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지만 원천적으로 내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검찰의 수사 방식에 부딪치면서 오히려 건강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에 놓이게 되었다. 검찰의 서슬 퍼런 기세에 아픈 내색 하지 않으며 당당하려 애썼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치료 후 피부가 갈라지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여러 부작용을 겪으며 병든 몸을 이끌고 조사를 받으러 다니면서 지친 나는 억울한 현실이 너무도 서글펐다.

한글인터넷주소 기술을 개발하여 전 국민에게 보급하기 위해 30대를 다 바치고 지금 투병까지 하고 있는데 공로나 보상은 못 받을망정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 검찰 조사를 받은 날이면 내 자존심은 있는 대로 뭉개져서 살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한글인터넷주소 보급을 위해 오로지 한 우물만을 파며 최선을 다해 온 지난 10년이 허송세월인 듯한 자괴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국가에서 도와주지 않더라도 내가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알아주리라 믿으며 나름 맡은 바 최선을 다 했는데, 오히려 국가의 최고 감찰기관이 넷피아와 나를 죽이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공허하고 나의 앞뒤는 온통 절망의 천길 절벽뿐이었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아픈 몸을 가누며 이 일을 해야 하나? 왜? 무엇 때문에?’ 국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울고 또 울었다. ‘아하 이래서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구나. 그것도 적대감을 가지고?’ 외국에서 뿌리 내린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분개하는 까닭을 예전에는 알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음으로 세상에 결백을 밝혀야겠다는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유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니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 아이들 방으로 갔다. 자고 있는 두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뜨거워진 눈으로 앞이 흐릿해졌다. 끊임없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마치 끓는 기름방울과도 같았다. 나는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죽음! 내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나는 과연 이기는 것일까, 지는 것일까? 그 순간 나를 음해하는 세력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아니다. 내가 여기서 죽는 것은 바로 그들이 바라는 것이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일을 내 스스로 하려하다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오히려 죽을 각오로 한번 해보자. 죽을 각오로 인터넷주소를 자국어로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자. 그렇게 다짐을 하며 깊은 심호흡을 하고 나니 다시 이런 결심을 하게 해준 모든 세력들이 한편으로는 고맙게도 생각되었다. ‘절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다짐하며 바로 유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힘을 다해 어금니를 깨물었다.

 

신뢰의 힘, 그리고 고마운 분들

위기의 칼날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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