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앙도서관을 내 집 삼아 3년째 변리사 시험을 대비해 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학원의 강사와 수험생들 간에 식사자리가 이어졌는데 여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평소 나의 모습을 눈여겨보던 강사가 슬며시 내 교재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뒤척뒤척 책장을 넘기다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꼼꼼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사업이나 한 번 해보지 그래요?”

예상치도 못했던 강사의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누구보다 열의를 가지고 수강을 해왔는데 내게 사업이나 해보라니 이게 좋은 얘기인지 나쁜 얘기인지 도통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변리사로서는 별 재주가 없으니 빨리 다른 길을 알아보라는 조언이었는지, 아니면 사업에 재주 있는 사람이 이렇게 변리사를 하겠다고 들어선 게 안타깝다는 것인지 말이다.

그날 이후 강사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과연 어떤 의미일까? 물론 변리사 시험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로서의 조언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연간 30명을 뽑는데 응시자 수만 5000여 명이 넘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으니 말이다. 나는 강사의 말이 나름대로 한 젊은이를 어려운 고시공부에서 미리 탈출시켜 다른 방법으로 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당부의 말로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이 길도 내 길이 아닌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목표였고 꿈이었는데 아니라고 하니 참담했다. 정말 안 되는 것인가?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강사의 이야기에는 분명 희망적인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나에겐 사업이 어울린다는 말이었다. 변리사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쉬운 한편 내 머릿속은 또 한 번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업이라!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사업은 무엇일까?'

그때였다. 변리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인터넷 도메인네임’으로 생각이 미쳤다. 당시는 인터넷조차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시기였다. 영문 알파벳과 숫자를 이용하여 만든 ‘인터넷주소인 도메인네임’은 1995년 7월부터 .com, .net, .org 같은 도메인이 상용화가 되면서 이미 외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인식조차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갖고 있던 차였다.

‘맞다! 바로 이거야.’ 나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강사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간의 공부는 정보통신의 세계를 알려준 통로라 생각하며 사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래도 나 같은 촌놈은 자갈밭을 일궈서 옥토를 만드는 일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비록 3년이나 준비해온 변리사 시험을 접어야 했지만 결코 아쉽지는 않았다. 변리사 시험을 위해 필요한 특허법, 상표법, 민법 등을 수십 번 보고 관련법에 대한 상당한 전문적 지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변리사 공부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찾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래! 보란 듯이 내 사업을 해보자! 난 할 수 있어! 수업료 없는 깨달음은 없는 법이니, 나도 드디어 운명적인 꿈을 찾은 거야.’ 라는 확신을 가지며 결심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인생을 걸고 도전해볼 꿈이 생긴 것이다.

그 길로 빚을 내어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 조그만 사무실 하나를 마련했다. 서너 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었지만 그곳에 야전침대를 들여놓고 집에 가는 시간도 줄여가며 사업 준비를 했다. 사실 돌아갈 집도 변변치 않은 실정이라 사무실을 집처럼 생활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리를 해서인지 덜컥 급성신장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몸이 아픈 건 둘째고 막 새 출발을 하는 참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 맘이 편치 않았다. 초췌한 모습으로 혼자 병상에 누워서도 내내 빌린 돈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문안을 온 고등학교 동창인 문기득이 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더니만 “너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며 아무 조건 없이 2천만 원을 내밀었다. 당시 모 은행의 대리로 있던 친구가 집에도 알리지 않은 채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왔던 것이다. 친구가 어렵게 마련했을 것을 생각하면 받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 돈을? 덥석 받아들었다. 그만큼 절박했고 당시 2천만 원이란 돈은 소중한 나의 사업을 위한 종자돈이었다. 그렇게 친구의 돈을 받아들고 나니 나는 아픈 것도 싹 낫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돈을 가지고 퇴원을 하자마자 사무실을 얻으면서 빌린 돈을 갚고 사무용 집기를 샀다. 그러자 돈이 곧 바닥이 났지만, 그 덕에 나는 그럴듯하게 사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사업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친구가 빌려주었던 그 돈은 후에도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업이 극한을 달리고 절망이 온 몸을 엄습해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에도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친구의 돈’을 떠올렸기 때문이고, 죽더라도 ‘그 돈만큼은 반드시 갚고서 죽자.’라는 각오 때문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애써 준 친구의 정성에 결코 누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한 그 마음 덕분에 오늘 그 날을 회고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나의 사업은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찾은 반전으로 시작되었다.


꿈 = 행복

가난했던 촌놈의 도전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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